작년에도 그랬고, 올해에도 나는 생일에 별 감흥이 없을 줄 알았다. 누가 챙겨주면 고맙고, 안 챙겨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. 그런데 미역국을 끓여주고, 축하해 주고,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해서 해리포터 팝업스토어에 같이 가자고 말해주는 동생이 너무 고마웠다. 동시에 다짐하게 된다. 돌아오는 동생의 생일엔 나도 꼭 축하해 줘야겠다고.
또 내 생일을 잊지 않고, 용돈 10만 원을 보내준 고모에게도 마찬가지다. 나도 잊지 말고 고모 생일에 꼭 축하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.
내가 '생일'이라는 개념을 처음 인식한 건 부모님 덕분이 아니었다.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, 동네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 때문이었다. 정확한 기억은 흐릿하지만,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뭘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, 초콜릿, 과자, 케이크 같은 어린 나에게 귀에 솔깃한 것들이었다. 그중 한 친구가 "어제", "그제" 같은 말을 하며 받은 선물을 자랑했고, 나는 그날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. 친구는 "내 생일"이라고 답했다.
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저마다 생일에 부모님께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. 그때 나는 생일이 '국경일'처럼 모두가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, '각자의 날'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. 그래서 집에 돌아가 부모님을 비롯해 함께 살던 어른들, 조부모님, 삼촌, 고모들에게 내 생일이 언제인지 알려달라고 졸랐다. 하지만 그 시절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부탁을 잘 들어주지 않았고,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.
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, 어느 날 처음으로 의료보험카드(지금의 건강보험증)를 받았을 때, 그곳에 적힌 생년월일을 보고서야 내 생일을 알게 되었다. 그 후로 나는 생일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.
내가 받은 첫 케이크는 부모님보다는 할머니가 준비해 주셨고, 생일 선물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여동생이 준 책받침, 그리고 그 당시 친했던 친구가 준 수첩이었다. 아마 그게 내가 처음 받은 수첩이었을 것이다. 그 해 막내 고모가 선물해 준 앨범도 참 마음에 들었다. 가장 '호화로운' 선물이었다고 느꼈지만,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삼 남매가 함께 쓰라고 준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살짝 충격이었다.
그래서일까, 그 해는 지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. 학교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잘해주셨고, 덕분에 같은 반 아이들과도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해였다.
그 이후에도 내 생일을 축하받은 기억이 남아 있다. 아버지가, 어머니가 축하해 주셨고, 막내 고모와 작은어머니도 축하해 주셨다. 작은아버지들은 아니었지만, 그래도 나는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. 사실 내가 기억하지 못했을 뿐, 나의 '진짜 첫 생일'은 첫돌이었을 것이다. 사진 속의 나는 축하를 받고 있었고, 5살까지의 사진은 지금은 가장 어려워하는 작은아버지가 찍어주셨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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